독특한 식감의 수타면 짜장/짬뽕에 요리까지 싼데 맛난 용산 용궁반점이 최근 폐업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슬픔/충격/공포에 빠졌다. 뒤늦게 그래서 더 다급하게 다른 데도 확인해보니, 유니짜장이 맛난 용산 국보성도 폐업ㅠ, 아직 짜장면을 먹지 못했는데 한양대 한양각도 오래전 폐업ㅠㅠ. 모두 동네주민을 상대로한 소박한 중국집/중식당이지만, 한국식 젠트리피케이션에서는 상상도 못할 몇십년째 영업으로, 오랜 시간의 경험과 노하우와 여유가 녹아든 간짜장, 유니짜장, 볶음밥을 내던 곳들이었다. 그 동네 주민도 아닌 경기도민이 굳이 광역버스에 지하철, 시내버스 환승해 수고롭게 찾아가 그 맛에 감탄한 나머지 용산으로 이사를 고민했었기에, 예상하지 못한 폐업에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충격과, 앞으로 동네에는 홍콩반점0410이나 교동짬뽕 프렌차이즈만 남는게 아닐까 공포에 휩싸인다.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2동에는 맛난 '동네' 중식당이 네 곳이나 - 대원각/상해루/홍보석/초동반점 - 그것도 200여 미터 반경안에 모여있다. 모두 배달 위주 중식당이지만 클래식한(옛날) 분위기 물씬 풍기는 홀에서는 배달보다 저렴한 가격에 짜장/짬뽕을 맛볼수도있다. 간짜장 맛있길래 몇년째 영업중이시냐고 주인장께 물어보니 20년 넘게 장사중이라기에 놀랐다. 다른데도 대부분 20년 이상이라고들 하니 그냥 오랜 영업을 뜻하는 대명사일지도 모르지만, 동네의 역사와 함께 오랜 시간 영업해왔고 지금도 저렴하고 맛난 한끼 식사로 동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곳임에는 틀림없다. 간짜장 맛나게 다 비우고 나니 슬픔/충격/공포가 조금은 걷히는것도 같다.
어쩌면 상대원2동의 중식당 밀도가 특별한게 아니라, 예전부터 동네마다 같은 밀도로 중식당 여러개 있었는데 나만 몰랐던 건지도 모른다. 역시 상대원동 근처 지하철 신흥역 주변만해도 지금은 폐업한 미도반점에, 궁금한 중식당만해도 명동반점/동성각/돈대봉/미도향 등 여럿 있다. 얼마전 천안 가는 길에 성환에 들렀는데 그 작은 동네에 동순원/향미원/대성식당/산동대반점 등 중식당 많아 놀란적도 있다. 최근 폐업했는지 간판은 그대로인 산동대반점은 규모가 꽤 큰데 진작에 방문하지 못해 안타깝기만하다. 구시가에만 옛날 중식당이 남아있는줄 알았는데, 분당 신도시도 벌써 20년이 넘은터라 찾아보면 오래된 동네 중식당을 발견할수 있다. 정자동만해도 서로 지근거리에 있는 일월담/동해루는 스타일은 전혀 달라도 오래된 역사와 간판 캐릭터만큼은 동일하다.
일월담의 간짜장과 동해루의 탕수육을 먹으면서 슬픔과 충격에서는 완전히 벗어났지만, 공포는 여전히 잠재되어있다. 두곳 모두 주인장 연세가 있고, 종업원 없이 주인장 내외뿐, 배달은 하지않고, 주말에는 쉬거나 단축영업을 한다. 다른 곳도 대부분 주인장 연세 많고 인건비 압박으로 종업원 없이 주인장 내외만 영업하는 데 많아서, 대략 10년안에 절반이상 폐업하지 않을까 두렵다. 웍질에 칼질에 중식 주방일 특히 힘든지 젊은 사람들은 중식에 도전하지않고, 기술의 발전으로 마트에서 초마짬뽕을 구입할수도 있으니, 동네 중식당은 모두 사라지고 레토르트 기반 중식 체인점만 난립하지 않을까 두렵다.
어찌보면 한국 중식의 역사는 거듭된 절망을 딛고 일어선 끊질긴 생명력의 역사였다. 120여년전 중국 산둥성 출신 노동자들의 한끼 식사 짜장미엔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짜장면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해방/전쟁후 재산권 제한으로 많은 화교들이 상업/농업에서 요식업으로 전환해 중식당이 많이 늘어났다고한다. 잘 숙성된 것처럼 위장하기위해 춘장에 첨가한 카라멜색소는, 이젠 검은색 짜장면만 봐도 침이 고이니 다른 색 춘장은 상상조차 할수 없다. 주인장의 노령화로 오래된 동네 중식당은 자취를 감출것이고, 꾸준히 자리를 지켜보려해도 임대료 상승으로 역시 자취를 감추겠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레토르트나 체인점 중식맛은 그럭저럭 먹을만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미래를 그냥 받아들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