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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 27.

짜장이냐 짬뽕이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요새 중국집에서 자주 점심을 먹다보니 오랫동안 잊고 있던 문제에 다시 부딪쳤다; 짜장면을 먹을것인가 짬뽕을 먹을것인가? 이미 오래전 짬짜면의 등장으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정작 개인적으로는 문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던것. 라드유에 볶아낸 춘장/양파의 고소한 짜장면이냐? 아니면 불맛나게 볶은 야채로 얼큰함의 차원을 끌어올린 짬뽕이냐? 선택은 분명 쉽지않아서 근원적으로 보이기까지한다. 짜장면과 짬뽕을 동시에 맛볼수 있는 짬짜면이 기대이하의 파급력으로 이제는 배달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도 이를 입증한다. 짬뽕 맛집이나 짜장면 맛있다는 중식당은 많아도, 정작 짬짜면 맛집은 없지않은가?

그러나 우리는 짜장과 짬뽕 사이 선택을 뛰어넘어야한다. 짜장-짬뽕은 진정한 대립이 아니며, 사실 그 둘은 또다른 관계/가능성을 은폐하기 위한 공모관계임을 깨달아야한다. 짜장-짬뽕 사이 선택은 더 맛있는 것의 선택이 아니라 덜 맛없는 것의 선택, 이제는 둘 다 질려버려 한끼 점심에서 조차 희망을 잃은 현실의 징후/증상. 짜장면은 더이상 라드유로 볶지않으며, 양파는 더이상 칼솜씨를 발휘해 유니 스타일로 내지않는다. 짬뽕은 더이상 야채 불맛을 느낄수없고 맵고 텁텁한 국물에는 홍합인지 지중해담치인지 껍데기만 산처럼 쌓아낸다. 이제 우리는 짜장-짬뽕의 해묵은 원환에서 벗어나 밥류-면류라는 새로운 관계를 상상해내야만한다.

따라서 볶음밥-짬짜면의 새로운 대립/관계는 눈여겨볼만하다. 단순히 볶음밥을 주문하면 짜장소소+짬뽕국물 같이 나오기 때문에 한꺼번에 맛볼수 있다는 문제가 아니다. 볶음밥에 내는 짜장소스는 짜장면과 다르고, 볶음밥에 내는 짬뽕국물은 짬뽕과 다르다. 볶음밥용 짜장소소+짬뽕국물에는 기본적으로 웍을 사용하지 않기에, 짜장면/짬뽕의 맛을 짐작조차 할수없다. 그보다 우리는 볶음밥이 선사하는 새로운 맛의 차원/조화에 눈을 뜨게 된다. 계란/대파/당근/돼지고기 잘게 다져 쎈 불에 볶아낸 볶음밥에서 우리는 고소한 맛과 자유로운 식감의 원형을 본다. 춘장과 고추기름의 자극 없이도 고소한 맛이 존재함에 감탄할 것이며, 정제탄수화물 면발의 일차원적 직선 운동으로는 상상조차 못할, 기름에 한톨한톨 코팅된 밥알의 무한한 자유도에 놀라 혀가 꼬일지도/쥐날지도 모른다.

잡채밥도 대안이 될수있지만, 맨밥 대신 볶음밥으로 내는 잡채볶음밥은 경계해야한다. 쫄깃한 당면에 불맛/고추기름 맛 좋은 야채/고기는 맨밥에 비벼 먹어야 잡채밥의 제맛을 느낄수 있다. 잡채만으로 꼬소할 자신없을때 슬쩍 볶음밥으로 고소함을 보충하려는 편법이며, 아무리 잡볶밥이 맛있다한들 그것은 결국 짬짜면의 전철을 밟을수밖에없다. 서울에서는 맛본적 없지만 인천에서는 짬뽕밥에 맨밥 대신 볶음밥을 내는데가 있었다. 매콤한 짬뽕국물에 고소한 볶음밥 한술 적셔먹으면 새로운 맛의 차원이 열리니, 짬뽕밥 주문시 일이천원이라도 더내고 맨밥대신 볶음밥으로 내줄수 있나 물어라도보자.

오늘날 짜장-짬뽕보다 더 뜨겁고 더 어려운 이슈는 탕수육 부먹-찍먹 사이 선택일 것이다. 배달 위주 중식 문화에서 해결은 분명 쉽지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친구사이라도 말도 없이 소스 들이부었다고 책망하기보다는, 왜 탕수육 튀김옷은 손쉬운 찹쌀튀김이 대세가 됐으며 바삭하지도 않은지, 왜 쬐끄만 고기는 부드럽지 않고 잡내가 스치는지, 왜 소스는 달기만하고 야채/과일 신선하지도 푸짐하지도 않은지 먼저 따져야한다. 거기에 한걸음 더 나아가 배달 주문보다 직접 가게/홀에서 먹어야한다. 예상외로 집 근처에는 맛난 동네 중식당이 아직은 많이 숨어있다.